믿음信은 인간관계 완성의 근본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사람 노릇이나 할지 모르겠다. 큰 수레에 끌채 끝의 멍에를 매는 가로나무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 끝 멍에를 매는 가로나무 월軏이 없으면 그런 수레가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는가? - 「위정爲政」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대거大車’와 ‘소거小車’는 고대 운송수단의 하나로, 소가 짐을 싣고 운반하는 수레를 대거라 하고, 말이 사람을 태우고 끄는 수레를 소거라 한다. ‘예輗’와 ‘월軏’은 소나 말에 맨 멍에와 수레를 연결하는 끌채의 가로나무이다. 자동차 엔진의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기어의 톱니바퀴가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고급차라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끌채가 없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의 수레가 된다. 공자는 ‘믿음信’이 없는 사람을 이렇게 겉만 번지레한 수레에 비유하였다.
사람의 관계를 두고 흔히 하늘이 맺어준 천륜天倫과 사람이 선택한 인륜人倫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부모자식 간의 천륜관계에서는 자애로움慈 · 친히여김親을 중시하고, 부부 · 친구 · 직장동료 간의 인륜관계에서는 믿음信을 강조한다.
공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인仁’을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무한한 사랑의 마음으로 비유하곤 하였다.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은 강제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마음이므로, 설령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부모는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의 마음을 토대로 아이를 이끈다. 이미 ‘우리’라는 하나 된 관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륜관계에서는 자주 우리가 동일한 마음으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상대방은 나와 관계없는 ‘남’에 불과하므로, 약속을 어기거나 잘못하면 적절한 책임이나 처벌이 필요하지, 관용과 이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부부든 친구든 직장동료든 자식처럼 본래 하나의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이 이런 행동을 했다하더라도 자식을 바라보듯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여전한 신뢰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바로잡을 것이다. 공자가 인륜관계에서 신뢰의 회복을 강조한 것도, 천륜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 사람사이의 기본이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궁극적 이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믿음信’은 사람人과 말言이 결합되어 내뱉은 말이 ‘참되다誠’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 믿음은 언행일치言行一致에서 비롯된다. 말로만 하는 공수표는 남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반드시 몸의 수고로움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실천해야 마음의 진정성이 전해질 수 있다. 인륜관계에서도 무한한 사랑과 믿음이 통용되는 만남의 실현을 위해 먼저 하고 싶은 말을 행한 후에, 행동한 것에 따라 말해야 한다先行其言而後從之, 잘못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고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過則勿憚改는 공자의 언급을 하루의 만남 속에서 다시금 새겨야겠다.